귀 없는 화가의 밤을 생각했다. 한 뼘짜리 침대에 누워 아이슬란드의 하늘을 상상하고 오로라가 나를 덮쳐온다. 잘 짜여진 베로 만든 푸르스름한 비단이 내 몸을 감싸오면 숨 막히는 줄도 모르고 컥컥대다가 형편없이 일그러진 밤하늘을 떠올리는 것이다.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외로운 시인의 밤을 생각했다. 뇌에서 혈관 속에서 심장 깊숙한 곳에서 나를 향한 비난이 ...
가끔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밤이 오면 갈기갈기 찢어지는 판옵티콘의 모양을 찾아 하늘에선 육각형이 내려오고 우리는 네개의 직선에 갇혀 종종 서로의 면회를 가곤 해 쭉 뻗어 날 찌르는 음성이 가끔은 곡선을 그리는 소리가 아크릴판에 부딪혀 스러질 때마다 우리는 육각형 상자에 갇혀 데굴데굴 구르지도 못하고 사는동안 부딪히기만 해 가끔은 ...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다가온 겨울이 춥습니다 모레부터 한파가 시작된다는데 저는 여전히 이곳에 고여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깊숙한 호수 밑에 누워 차렷 자세를 한 시체처럼 간밤엔 질척이는 꿈을 꿨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도 않았는데 매번 제 발은 늪지대에 빠져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늘 익사 직전의 물고기마냥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아침은 어느새 제게 죄악이었고 언젠가...
1. 그 새는 쪼개진 부리에 갈라파고스 제도가 새겨져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 아홉 갈래로 갈라진 틈이 보였다. 나이지리아 강줄기가 맞닿은 곳으로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 새는 꺾인 날개를 하고 더딘 몸짓으로 포말의 흔적을 더듬어갔다. 언젠가 무수히 핀 메밀꽃밭 위를 훑으며 창공을 비행하리라. 새의 눈동자 속에 텅 빈 우주가 있었다. 우주는...
사랑하는 자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도적처럼 훔쳐본다 어쩌다 愛情의 잔향을 들이마쉬면 나도 그리 될 것마냥 달을 등지고 행복의 냄새를 개처럼 핥다가 버스를 놓쳤다 내가 탔어야 할 두 다리로 올라타 내 죄의 삯을 치뤘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놓치고서야 붙잡지 않은 게 아니라 보내주었음을, 다시 贖罪의 시간 강에 물이 흘러 넘쳐요 이런 저도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회...
1. 때가 왔다 목청 높여 울부짖는 포말의 생김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방파제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파도의 유연한 몸짓과 발가락에 낀 모래 알갱이를 털다가 다시 잘게 흩뿌려지는 흰 부스러기를 눈으로 몇조각 집어먹고 1-1. 푹푹 꺼지는 맨발 주의하십시오 전방 오십미터 사냥꾼의 올가미 허벅지를 쥐어뜯는 무지막지한 大敵 2. 멀리서 출항의 내음이 났다 흔들리...
서리꽃 핀 창 너머로 저울질하는 여자의 입에는 단내가 났다 오랫동안 감지 않아 누렇게 뜬 눈으로 밤새 너와 나의 사이를 저울질했다 왜 우리는 침묵으로 와서 환희로 가지 못하고 그저 고요에만 머무르고 있을까 더 이상 찾지 않는 서로를 뇌까린다 한밤내 보던 책을 덮고 구절을 읖조리다 까무룩 잠에 들 것이다 그럼 밤의 사자들이 방문해 오늘 하루도 잘 낭비했구나,...
삶 뒤에 또다른 삶이 있다구요 곧 이 삶도 다 끝나버린다구요 그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살 부때껴 낳은 지금의 삶은 가벼운 스텝으로 왈츠를 추고 있나요 당장 허물어질 무대 위에서 나의 헌신적인 순종을 보세요 순종 뒤에 또다른 순종이 있다고 두 겹으로 올린 가면을 벗고 활보하는 승자들의 야유회 가식 뒤에 가식이 있음을 당신은 끝내 알아채지 못할까요 선택으...
파지같은 영혼이여 어느 구천을 떠돌고 계십니까 놈들의 껍데기통에 파묻혀 먼 파리 끓는 대륙을 덥히고 고물상 600원어치 값을 매긴 역한 위선의 주머니를 채우고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서 고독과 領과 肉 사이에서 저 또아리 튼 나신을 보십시오 서서히 허물 벗고 죽어가는 가난한 탈피의 몸부림을… 오오, 竊盜된 영...
죽어가는 모든 것 속에 내가 있었다. 그것들을 사랑해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사그러지는 여름의 노을, 세상의 화형식 같았던 해질녘을 기억한다. 찬 기운이 발바닥을 두드리듯 깨어나는 아침과 더 이상 발가벗은 나체들의 밤을 거닐 수 없는 계절이 찾아오면 참을 수 없이 슬퍼지곤 한다. 우울은 지성의 대가라던 그 오만한 문장을 곱씹고 또 곱씹고 하도 눌러서 짓...
옆동네 골목 죽은 두더지가 더러 발견되었다 누구 소행인지 몰라 108동 주민들은 기다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너지 너지하며 꼬리를 물어뜯기 바빴던 아래층과 아무데나 뿅망치 두드리던 맨 위층 사람들은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털 다 뽑힌 두드러기 시체가 대문짝만하게 박제되자 온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만은 건드리면 안됩니다 선을 넘었습니다 꼭 잡아야만 합니다 11...
여기 욕심많은 수제 인형이 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원한 적 없던, 그들이 설계한 길 위에서 모 아니면 도? (우레탄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모 그리고 도! (웃는다 합성고무가 찌그러질 정도로 활짝) 늙은 주인의 부르튼 손아귀가 싫고 삐걱대는 구관이 뵈기싫고 나는 만들어진 대리석 인형 단지 화학 반응의 인공물 말고 수제 장인의 분내나는 손톱 할퀴면 피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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