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걸 관두기까지 썼다. 뭘 쓰는 지도 모르고 써내려가면 삶이 가까이 오는 줄 알았다. 뱉으면 뭐가 된대서 뭐가 될 때까지 삼키고 뱉었다. 툭하면 씹어대는 껌처럼 단물이 다 빠진 글이었다. 온통 흐렸다. 내 사고의 총체는 나로 귀결되는 삶, 도망치고 외면해가면서 다시 돌아온 얼굴을 훑었다. 처음보단 끝을 상상한다.
죽음으로 가는 표가 편도뿐이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삶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이쪽으로부터 저쪽까지 눈에 보이는 게 뭔지도 모를 때까지 극과 극을 오갔다. 푼타 거쳐 배로우로 향하는 내 하루, 아침엔 붉은 등대 저녁은 ¹나누카탁 내일은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서 슬퍼할지 여지껏 나의 삶은 극과 극이었다. 세상 밑바닥, 그 깊은 절망의 구더기를 핥다가도 언제는 ...
여인의 눈덩이가 푸르다 예컨대 아무도 산 적 없는 색조였다 잘 봐 번쩍번쩍 빛나서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잖아 그리 말하는 눈이 가려질만큼 퍼래서 잘 먹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는 거지 짜리한 털 하나씩 바닥으로 쳐박힐 때 아,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 그렇게 올린 가루가 한 둑이었다 아프지는 않니 덮으면 그만인 걸요 지독한 자멸의 향, 섞어 칠하는 손 묽게...
꿈을 꿨다 한밤중에 영문도 모르고 달아나는 꿈이었다 누구로부터 그리 바삐 도망치냐고 묻기도 전에 깼다 나를 찾는 전화기의 떨림이 오랜 벗의 흔들리는 어깨 같아서 애가 머리통도 조막만하고 척추가 이쁘게 섰더라, 흐느끼는 웅얼거림에 잠기운이 싹 달아나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꿈 속에서 그리 달려가던 게 너였니 쫓기고 쫓기다 나한테로 왔구나 요 눈코입 좀 ...
스스로 자문하는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그에 반해 당장의 쾌락을 얻고 사는 자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평화로운지. 저녁 먹던 수저를 내려놓다 사사로운 생각에 잠겼다. 인생의 덧없음을 식탁 앞에서 깨닫는 자의 머릿속은 얼만큼 복잡해야 하나, 감자를 으깨는 손이 이상하리만큼 당찼다. 쉴 새 없이 입을 조잘대다가도 도끼눈 뜨는 연습을 할 리 없는데, 이젠 너무 ...
사랑하는 자들이여 모두 침묵하라 그런 글귀를 본 적이 있는 당신 한동안 잊다가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누워 외롭지 않은 고독을 보내다 어느 순간 되뇌겠지요 요새 종종 행복을 느끼는 당신 스치는 나뭇잎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의 고함과 진동하는 탁자의 맨다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젖은 손수건과 베란다의 환기도 별 것 없는 기억에 불과하겠지요 요새 종...
내일 술 약속이 있다. 지금 자는 것이 좋지만 왜인지 글을 쓰고 있다. 한동안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고전이라 불리는 수많은 창작물 사이에서, 기대하는 것은 찾기 힘들었고 진한 감정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스스로를 의식할 뿐이었다. 양방향의 사랑이란 얼마나 평화로운가. 또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지에 대해 자랑스레 쏟아낼 글자들, 그것들로 만들...
모든 패배하는 것들이 나를 향해 인사한다 추켜든 얼굴에 짙은 다크서클 이게 네 모습이야, 라고 매일 밤 스스로 각인되어지고 머리는 사흘째 감지 않았다 나를 씻어가는 과정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치장하는 시간을 거부했다 나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누가 말했듯 삶이란 한낱 루머에 지나지 않는데 그래, 인생은 영원한 소문 내가 여기 있었다고...
그가 물었다. 뭐가 사랑이어야 해?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럴듯한 단어들의 조합을 되뇌이다가, 그만두었다. 입술을 떼기도 전에 그의 뒷모습이 내 시야를 콱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하잖아요. 당신 말대로 손도 보드랍게 만들고, 정수리에서 향긋한 치자향이 난다고 해서 모든 걸 바꾸었는데…. 몸에서 울긋한 냄새가 솟아오른다. 이 껍질을 벗고 한없이 그...
햇볕을 좀먹는다 아삭아삭 양배추 씹히는 소리를 내는 오로지 쏟아지는 정오의 시샘을 받들면서 계절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요 뭘 보고 있어? 왜 시작하려 하면 발목을 붙들어 매는지에 대해 차가워지려 하면 끝까지 뒤쫓는 열기의 잔상에 대해 멈춘 시간을 보고 있어 새로 산 시계가 손목을 꽉 조이는 일곱 살 아이의 진상에 대해, 부드러운 살도 아니고 쬐어오는...
들어와, 이리로. 옳지. 내가 무섭니? -아, 찌를 듯한 뜨거움이 닿은 곳마다 나를 농락하고. 그는 수줍은 소년과 달리 너무나도 능숙한 손짓과,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점점 더 깊숙히. 나를 옭아맨다. 오, 하느님. 이 사람이 정녕 제게 주신 행운의 전부인가요. 이 모든 것이 가엾은 아이에게 주신 선물의 마지막이라면, 저는 어찌해...
처음 시를 쓴 게 언제였나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육학년 중학교 이학년 혹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시를 짓는다 밥을 짓는다 너무 넘쳐서도 없어서도 안되는 시와 밥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시밥을 배부르게 먹는다 병들게 하는 벌레가 생기면 마늘을 넣고 봉하라 하셨지 어머니 그럼 시가 병들면 무엇을 넣어야 하나요 쓰지 말고 지어라, 아무도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